새 몸을 가지기 위해 벌어지는 화면 위의 미시적인 투쟁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거스를 수 없는 평등한 숙명과 같아서 나이와 경험의 많고 적음에 상관하지 않는다. 누구든 새 몸을 원한다면 스스로 거푸집을 지어 설계하고 그 속에 중첩된 시간과 붓질을 쌓아 올려야 한다. 반복적인 붓질은 파도처럼 현재의 시간을 계속 밀어내면서 수많은 과거를 만들어 내고, 미처 과거로 빠져나가지 못한 마르지 않은 안료와 현재를 뒤섞는다. 과거와 현재, 관념과 물질, 거리와 온도, 대상과 믿음이 섞이고, 마지막 가칠이 얹히면 투쟁의 시간은 멈추고 거푸집에서 새 몸이 분리된다. 화면 위의 시간과 붓질은 투명해서 밀어낸 과거의 색이 현재의 색과 겹쳐 희미하게 빛을 낸다. 획이 그어지고 색이 칠해진 그림의 표면은 껍데기이면서 피부이고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 끝에 얻은 새 몸이다.
*윤경희 작가의 산문집 「그림자와 새벽」에서 “모호는 새 몸을 만드는 거푸집이어서. 막연은 새 몸을 만드는 시간이어서. 읽는 사람은 읽을 때마다 그렇게 자기를 부수고 새로 만들어 나가는데”라고 적은 것에서 가져왔다.
백승현